우연히 도시 한 가운데서 묘지를 들렀다. 두터운 문턱을 건너 들어간 그곳엔, 작열하는 햇빛이 만발한 녹음에 부딪혀 눈 둘 곳 없이 반짝이는 빛과 그림자가 사방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곤 비석 위에 피어난 이끼들과 그로써 이름 잃은 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죽음이 세상에 흩어진 삶의 흔적을 거두어들일수록 이 이끼들은 이름과 숫자를 계속해 덮어나가겠지. 그렇게해서 생명력은 문턱 넘어까지 번져 나갈 것이다.
<Moos>는 나의 죽음을 앞서서 가늠해보는 일련의 시도를 기록한 영상이다. 독일에서의 첫 정착과 동시에 진행된 이 작업에는 창작을 하는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낮선 곳에 정착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처음 알게 된 이웃 노인과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경험은, 다시 말해 노인의 목소리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나의 죽음 뿐만 아니라 보다 더 포괄적인 죽음을 생각해볼 계기가 되었다. 다른 모양을 가진 개개인의 목소리는 서로 다른 입장을 대변한다. 따라서 이 영상은 한국으로 보내는 내 편지를 읽어내려가는 노인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이 영상의 이야기가 나에게만 국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작업은 앞으로 일어날 정착과 떠남을 단위로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Moss, object, granite, moss, handwagen, performance, video 5’10”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