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쓰는 일

몸 쓰는 일

     아빠는 내가 대학에 입학한 그해 버섯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7년 전 아빠는 독서실을 열었고, 아빠의 집은 독서실 카운터 뒤편 작은 홑 창문이 딸린 단칸방이었다. 그리로 햇빛이 들어왔던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노랗지도 파랗지도 않은 형광등 불빛이 그곳의 색이었다. 독서실 전체 벽엔 나무 무늬 시트지가 붙어있었고, 그 위엔 산소를 만들어낸다는 작은 기계들이 방방마다 물을 보글거리고 있었다. 물은 그냥 평범한 수돗물이었다. 나는 주말이면 그 기계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냄새 속에서 공부하곤 했다. 나는 그 소리도 냄새도 좋았는데, 언젠가 컴퓨터 모니터 속 예약된 좌석 수가 줄어들기 시작할 무렵 작동을 알리던 기계들의 파란 불빛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모든 방의 불빛은 자취를 감췄고 다만 O2라 쓰인 듬직한 문구만이 자리를 지켰다. 독서실 곳곳엔 아빠의 말투로 인쇄된 이용 시 주의사항들이 붙여져 있었다, 그 문구를 읽으며 이곳 학생들이 어떻게 아빠를 괴롭히는지 가늠해 보곤 했다. 내가 아닌 다른 어린 사람을 대하는 아빠의 모습, 본 것 같은데 왜인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독서실에서 바깥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없었다. 휴게실에 난 창문 위로는 옥외 광고용 시트지가 붙여져 있었고, 그마저도 소음 유입의 문제로 항상 닫혀 있었다. 종종 아빠 대신 데스크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자를 좌우로 빙빙 돌리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아빠 몸에 맞춰진 의자 위로 보다 작은 내 몸이 헛돌았다. 의자가 내 몸도 기억하기엔 나는 그저 어쩌다 지나가는 방문객에 지나지 않았으리. 의자에 앉아 긴 복도 끝을 향해 바라보면 그 끝엔 회색 철문의 비상 출입구가 있었고, 문 너머 초록색 방수재가 칠해진 작은 주차장에서 아빠는 운동하거나 담배를 태웠다. 그 세월 동안 한 층 계단을 올라 버튼을 누르고 독서실 유리문이 열리면 아빠의 얼굴은 매번 같이 안내 데스크 뒤편에 떠 있었다. 그리고 그 해, 행성에서 이름을 따 왔던 독서실, 그곳에 접혀 들어있던 생을 다시 펼치고자 아빠는 땅이 너른 곳으로 갔다.

     아빠는 세 자식을 다 키우자 버섯을 키우기 시작했다. 아빠를 만나기 위해선 이제 시내버스론 부족하고 고속버스를 타야 한다. 아빠를 보러 가는 건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유지되고 있던 내 일상 속 이벤트에 가까운 일이 돼버렸다. 엇비슷해 보이는 논밭을 지나다 보면 아빠에게 할당된 비닐하우스가 몇 채가 등장하고, 그 안엔 마치 검은 메주처럼 보이는, 배지라 불리는 나무 톱밥 덩어리들이 선반 위로 가지런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버섯은 그 배지 위로 피어오른다. 때에 따라 배지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때론 완숙하게 자란 표고버섯들이 사방에서 둥근 갓을 이리저리 들이밀고 있었다. 버섯의 생애 주기에 따라 하우스 안에는 다른 냄새가 났다. 건조하거나 혹은 수분기를 머금은 흙냄새, 혹은 아빠가 만들어낸 것인지 버섯이 만들어낸 것인지 모를 묘한 습윤. 인쇄된 나무 무늬 사이를 몇 보씩 걷던 아빠는 이제 손수 만들어낸 배지 블록 사이를 이리저리 거닐었다. 슬리퍼와 외출화만 있던 신발장은 보다 다양한 용도의 신발들로 채워졌고, 플라스틱과 비닐 시트지가 떠오르던 아빠의 공간은 쇳소리와 차 바퀴에 짓이겨지는 흙 알갱이 소리가 들리는 공간으로 옮겨갔다. 평생을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빠는 늦은 귀농으로 인해 농촌에서 겪는 이러저러한 어려움을 토로하곤 했지만, 근심 어린 얼굴 위에는 그래도 그을린 햇빛의 흔적이 선연했다. 그것은 뭔가 살아있음에 대한 증거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때쯤 우리 모두의 냉장고엔 표고버섯이 마를 일이 없었다. 아빠를 만나 돌아오는 길엔 각자 지인들 선물용까지 가세하여 양손 가득 표고 상자가 들렸고, 세 남매는 각자 다른 곳에서 분기별로 아빠가 보낸 표고버섯을 배송 받았다. 혼자 살던 나는 가장 적은 양을 받았다. 직육면체의 상자를 열면 수분기를 머금은 표고 향이 순간적으로 올라와 코안을 가득 메운다. 싱싱한 버섯의 살은 특히 실한 동시에 너무나 여려서 손톱자국이 날세라 손가락 끝으로 조심히 만질 수밖에 없다. 손끝에서 버섯 살 위로 난 짧고 또 조밀한 털들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강한 인상의 냄새, 여린 촉감이 자아내는 놀라움도 냉동실에 저장된 딱딱한 버섯이 늘어감에 따라 시들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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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섯은 곰팡이다. (곰팡이는 식물도 동물도 아니다.) 곰팡이인데 걸레로 훔쳐낸다 해도 스러지지 않는 좀 더 견고한 실체를 가진 곰팡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살이 붙은 곰팡이를 버섯이라 부르고 그것을 먹는다. 사실 버섯을 이루는 더 큰 부분은 숙주의 표면 아래에 있기에 이 살집이 버섯의 전체라고 할 순 없다. 버섯은 죽은 나무, 죽음이 남긴 양분을 머금은 토양, 혹은 인간이 만든 배지 등을 숙주 삼아, 숙주의 표면 아래 빛 없는 곳에서 생을 시작한다. 버섯은 광합성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햇빛이 필요하지 않다. 대신 죽음이 남긴 무언가를 빨아 먹는다. 모든 생물이 그러하지만, 버섯은 탄생이 죽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자신을 예로 들어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나는 버섯의 뿌리이자 줄기인 균사(菌絲)에 대해 아빠에게서 처음 들었다. 버섯 균자에 실 사자, 즉 실 모양의 버섯 균을 의미하는 균사는 버섯이 자랄 토양이나 나무 등 숙주의 저변을 하얀 실로 얽고 얽어서 점령해 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퍼진 균사가 주위의 영양분을 먹어 충분히 완숙하면 숙주의 표면 위로 균사의 꽃이 피어오른다, 그것이 버섯이다. 만일 균사를 나무뿌리에 비유한다면 사실 버섯은 나무와 달리 불가산 명사다. 뿌리를 가진 식물의 경우 뿌리의 끝을 기준으로 한 그루 두 그루 셀 수 있지만, 균사는 균사간 어떤 경계나 한계점을 가지지 않기에 셀 수 없는 물질 명사에 가깝다. 따라서 한 숙주 위로 자라난 버섯들은 사실상 같은 균사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버섯을 한 개 두 개 세는 것은 엄밀히 말해 버섯 그 자체를 세는 거라기보다, 하나의 단위 명사의 도움을 받아 편리하게 수량화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딘가 표면 위로 피어난 버섯은 그 밑에 숨겨진 더 넓은 유기체 네트워크를 상징한다. 나무의 경우, 나무는 땅을 숙주 삼아 그것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또한 동종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불가산 물질 명사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지구라는 숙주 위에 자리한 모든 것은 어쩌면 버섯의 균사처럼 동일한 에너지 기관을 가졌을지 모른다. 다만 우리는 버섯을 세듯, 지구 위로 피어난 모든 것마다 새로운 단위 명사를 붙여줬는데, 이러한 상상에 따르면 우리가 아는 모든 이름은 실로 불가산 물질을 세기 위해 고안된 단위 명사와 다름없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물질들이 자신의 단위 이름을 잃어버린다면, 지구를 공유하는 것들은 서로 간의 경계를 잃고 뭐가 뭔지 구분지을 수 없는 곤죽 상태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셀 수 없는 물질의 상태로 말이다. 이러한 생각은 일면 지나치게 환원적이지만, 우주를 빅뱅 이전의 한 점에 비유하는 경우도 있거니와, 적어도 나에겐 인간이란 종이 이러한 상상을 진실로 지각하며 일상을 살도록 특화된 감각 기관이나 장기가 없다는 것이 진화가 놓친 애석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지만 (그리고 이 지식은 분석적이고 분열적이다.), 연결과 통합에 대한 감각은 갈수록 잃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버섯과 균사, 숙주의 관계를 생각하면 많은 비유 거리가 생겨난다. 한 숙주에서 피어오른 버섯들은 서로 형제일까, 그렇다면 쌍둥이일까 아니라면 도플갱어일까. 임의의 한 발원점의 무한한 복제본일 수도 있겠다. 만일 우리가 버섯이라면 우리의 균사는 우리 발바닥 밑에 달려있을까, 그럼 이 균사는 어디를 숙주로 숨어 있었을까. 이는 얼마나 넓게 퍼져있고, 또 무슨 색과 냄새를 띨까. 한편 왜 우리는 우리의 균사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을까. 우리는 언제 균사로부터 탈락 됐을까. 혹은 누구에 의해서?  

     버섯이 키워지고 버섯이 자라나는 과정을 상상한다. 곰팡이는 어디에나 있다, 공기 중에도 있어서 숨을 쉬는 건 곰팡이를 마시는 것과 같고 우리의 들숨과 날숨에 공중의 곰팡이는 파도를 타듯 일렁거릴 것이다. 이토록 작은 씨앗이 어딘가에 안착해 그 곳에 잠재된 생명력을 빨아먹기 시작한다. 생명체가 영위한 삶의 흔적으로써 시신과 유해들은 다시금 생명력으로 분해되어 곰팡이의 삶을 지탱한다. 인간의 거주지가 명확한 경계를 가진다면, 곰팡이의 영토는 모든 땅에 달할 것이다. 잠재된 생명력이 있는 곳 그 어디든 균은 자랄 수 있기에, 식물도 동물도 도달할 수 없는 곳까지. 생명력을 빨아 먹고 곰팡이는 실이 되더니 자신의 몸으로 어슥한 음지의 공터를 여백 없이 메꿔 나간다. 다 메꿨다. 더 메꿀 곳을 찾아 균사는 숙주의 피부를 뚫고 스며 나오기 시작한다. 조용한 폭발. 폭발의 자리 위로 피어난 버섯은 균사가 지닌 충만한 힘의 표상이자, 더는 자신의 몸을 현상 유지할 수 없었던 생명력의 토악질이다. 어느새 살집을 키운 버섯 그 아래엔 유유히 생명이 돈다. 보이지 않던 존재가, 우리의 인지력에 가려졌던 곰팡이가 몸이란 집을 갖더니 그 몸을 써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공간을 차지한다. 현재 인간은 몇몇 버섯 종을 대량생산 할 수 있다. 하나의 생명체를 원하는 수량만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그 생명체에 대해 절대적인 권한이나 혹은 통제력을 갖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인간의 스케일에서 그것은 일면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버섯의 스케일에서 ‘먹다’, ‘자라다’, ‘살다’ 의 동사를 실천하는 것은 바로 버섯균 자신이며, 그들의 스케일은 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의 인식 밖에 머무를 것이다. 비유적인 차원에서, 비물질에 머물던 것이 만질 수 있고, 무게를 갖고, 성질을 갖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선명한 것으로 직조되어 자라난다. 가시적인 의미로, 무에서 유가 생겨난다. 되돌아가 버섯이 공기 중에 떠돌던 곰팡이 균에서 시작된 것을 떠올리면, 버섯의 가능성은 이미 벌써 공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구의 중력이 달하는 모든 곳에는 공기가 있으므로, 무에서 생명이 탄생할 가능성이 지금 바로 이 순간 내 옆에도 도사리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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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버섯을 재배할 당시, 아빠가 버섯을 키운다는 건, 내게 그저 단순한 사실에 지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서야 사실은 천천히 의미를 갖기 시작했고, 그걸 이제 눈치챈 나는 아빠에게 버섯 재배와 관련해 이것저것 묻기에 이르렀다. 아빠의 대답엔 이미 벌써 많은 단어가 잊힌 채 지워지고 없었다, 그리고 목소리에선 의외라는 감정이 묻어났다. 왜 묻냐는 질문을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 지금으로서 생겨난 관심을 이어나간다. 아빠는 표고와 연관된 자료며 책이며 이미 처분했다고 당시에 직접 기록한 사진이나 분석한 표 같은 걸 보내줬다. 꽤 많은 양의 기록들이 나름대로 크고 작은 질문을 내게 던졌다. 그중 가장 눈에 띈 것은 다소 희한하게 자라난 표고들을 찍은 사진이었다. 어떤 표고는 배지 속에 동굴처럼 난 공터를 자리 잡아 자랐고, 어떤 놈은 머리에 쓴 갓과 기둥이 합쳐진 어색한 몸을 가졌으며, 샴쌍둥이처럼 두 기둥에 머리가 하나로 합쳐진 것도 있었다. 걔 중 한 표고는 특히나 유별났는데, 곧 잘 자라난 갓 위로 정 구(球) 모양의 머리를 하나 더 단 놈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자기 머리 위에 구태여 뭘 하나 더 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진을 보면 볼수록 머릿속엔 없던 기시감이 자라났다. 어처구니없게도 남의 몸 위에서 신선놀음하듯 평화로이 앉아 있는 그 모습은 분명 내가 어디선가 이전에 목격한 것이었다. 

     버섯 재배 일을 시작한 이후, 지금은 더 이상 버섯을 키우지 않는 아빠의 메신저 프로필엔 아직도 “표고버섯같은 막내!!!”가 적혀있다. 표고버섯 키우는 아빠를 본 적 있어도 나를 키우는 아빠를 본 적 없는 나는 저 문구를 읽을 때마다 형용하기 힘든 불편한 기분에 휩싸인다. 왜 저 직유는 나를 향하는 것일까? 아직 아빠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본 적은 없다, 왜 저렇게 쓰셨냐고. 아마 앞으로도 묻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저 표현은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나를 버섯과 병치시키도록 만든다. 아빠는 표고를 5년 정도 키웠고 나는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인위적으로 각인된 풍경을 제외하면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 유아 시절의 내가 눈에 담았던 아빠의 얼굴을 나는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참 많이 웃었다고 하는데, 부모의 기억에만 존재하는 나를 정작 나는 남일처럼 듣는다. 그런 점에서 나를 버섯과 나란히 놓아 보는 건 비어있는 어린 시절의 내 기억에 어떤 실마리를 제공한다. 길러지는 버섯은 길러졌던 나에 대한 비유다. 그리고 이 비유를 통해 비어있는 그때의 기억을 전적으로 새롭게 꾸려볼 가능성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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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보내준 사진 속, 버섯의 집, 배지는 한때는 홀쭉하게 찌그러져 있다가 어느 순간 균사의 생명력으로 가득 차 거의 부풀어 올라있다. 갓 만들고 겨우 뭉쳐져 있을 뿐이던 배지는 균사가 차오름에 따라 종국엔 엄청 단단해진다고 했다. 그 강도가 두 손으로도 쪼개기 힘든 수준이 되는데 건강한 균사의 힘이 인간의 손아귀를 이긴 셈이다. 단단하게 여문 배지를 열어보면 그 안은 온통 하얗고 빈틈이 없다. 베이지색의 나무 톱밥들 사이로 흰 눈 같은 균사가 빼곡히 들어차 있고 그 둘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아빠는 나무 톱밥으로 배지를 만들고, 그것 안에 균을 주입하고, 그래서 균사로부터 살이, 그러니까 버섯이 자라 올라올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그 모든 과정을 농장에서 홀로 했다. 하우스 건너편 컨테이너 건물 안엔 이른바 실험실이 있었다. 알 수 없는 기계들에서 아빠가 여러 배양용 유리 살례를 꺼내 보인다. 샬례 안엔 각기 다른 색의 곰팡이가 피어 있었는데, 아빠는 실수했다며 곰팡이 색이 하얘야만 한다고 했다. 그렇게 실험된 균들이 배지로 주입되었다. 배지를 벽돌 모양으로도 만들어보고 원기둥으로도 만들어보고, 하우스의 온도나 습도도 조절하면서 아빠는 통제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변수를 가지고 실험했다, 버섯을 더 잘 키우기 위해. 그리고 버섯은 이 통제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것에 반응하고, 반응함으로써 아빠에게 다시 말을 건다. 버섯이 건네는 그 조용한 말을 알아채는 자는 물론 아빠다. 아빠의 오감은 항상 버섯을 향했고, 아빠는 그들에게 더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몸을 서둘렀다. 이 점에서 아빠는 버섯이 내뱉는 힌트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것에 반응하고, 반응함으로써 버섯에게 다시 말을 건다. 이로써 버섯과 아빠는 서로가 서로에게 반응하는 동등한 대화의 참여자가 된다. 서로를 특정한 방향으로 추동시키는 동시에 그 추동에 반응하는 관계의 당사자들인 것이다.

     버섯의 몸은 다른 몸들과 좀 다르다. 곰팡이는 환경적 조건이 갖춰지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치 춤을 추듯 자라난다. 버섯에게 환경은 거스르거나 수용하거나 양자택일의 대상이라기보다, 춤을 추기 위한 파트너로서 역할 한다. 파트너의 춤에 집중하다 보면 자신의 그다음 동작이 자연스레 뒤따르는 것처럼, 이 춤에 따라 버섯의 오체(五體)는 다양하게 자라난다. 환경에 감응하며 팔이 여러 개일 수도 있고 혹은 머리가 여러 개일 수도 있는 버섯의 몸은 그만큼 버섯이 환경과 예민하게 조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버섯의 몸은 그래서 예측할 수 없다, 우리로선 수시로 솎아내면서 원하는 모양으로 유도 할 수 있을 뿐이다. 배지의 표면 위로 막 자라기 시작할 때의 표고는 검은 갈색 배경 위에 핀 하얀 팝콘처럼 보인다. 점차 그 자리에서 아기 손가락 같은 하얗고 둥근 기둥들이 솟아오르는데, 그 가닥들이 너무 많을 땐 거의 징그럽게 보인다. 그러면 좀 더 성한 놈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손으로 작은 몸들을 따주어야 한다. 아빠의 손으로 버섯들이 솎아지거나 수확된다. 이것도 하우스의 버섯들에겐 하나의 환경으로 작용했으리라. 충분히 자란 표고들은 배지 위에서 마치 혼자 서 있는 우산처럼 머리에 난 갓을 넓힌다. 버섯의 기둥은 밝은 베이지색에, 갓은 갈색을 띠고, 갓 아래쪽엔 포자를 퍼트리는 기관인 주름살이 촘촘한 바큇살 모양으로 기둥과 갓을 연결한다. 우수한 상품으로 여겨지는 표고는 갓 위에 이른바 가뭄 난 땅처럼 갈라진 무늬를 가지는데, 아빠는 재배를 시작하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 무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무늬는 비단 상품성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리로 도달하기까지 이뤄졌을 버섯과 아빠 사이의 무수한 가상의 춤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두 개의 상이한 존재가 이 엮임을 얼마나 성실히 참여해왔는지에 대한 증거이자, 이곳의 환경이 버섯에게 꽤 좋았다는 증표로써 아빠에겐 하나의 보상이 되었을 것이다. 때때로 하우스 내의 관리가 잘 못 이뤄지면 어린 버섯들은 푸른색을 주로, 다양한 색을 띠며 썩어가기도 했다. 아빠가 준 사진 속 썩어버린 표고는 문자 그대로 피처럼 붉은 뻘건 액체를 쏟아내고 시들어 있었다. 밝은 미색과 갈색으로 성장하는 표고에게서 짙디짙은 붉은 색이 튀어나오는 놀라움과 더불어, 썩은 버섯이 피와 같은 액체를 뱉어내고 죽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의미심장한 일이다. 하얀 곰팡이에 푸른색이 번지고 베이지색의 버섯 위로 자줏빛 액체가 맺힌다. 사진에서 부패와 죽음은 이렇듯 명백히 자신을 보다 가시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눈에 띄는 색이 자연계에서 갖는 의미를 생각하면 이는 어떤 광고 행위에 가깝다. 이때 이를 보고 버섯의 무덤을 찾은 건 아빠였을 것이다. 그렇게 버섯과 아빠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의 몸을 필요로 하는 평행선을 그린다, 서로의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나사선처럼. 

***

     첩첩이 쌓인 가족 앨범 속 몇 장의 사진은 갓난아기의 나를 등에 메고 등산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준다. 몸 위에 몸 하나가 더 붙어 앉아있다. 내가 어떻게 그 아기를 나라고 알아봤냐면 그야 단순히 가족들이 내게 말해줬기 때문이다. 쟤가 나라고, 저 얼굴이 내 얼굴이라고. 그렇지 않고선 몰라봤을 테다. 사진 속 그 아기는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아빠 등에 매달려 있다. 정상 풍경 뒤로 보이는 커다란 기념석을 보아하니, 이 산은 완등을 축하할만한 꽤나 험준한 산인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기의 얼굴엔 어떤 표정도 없다. 마치 이 상황과 자신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 마냥. 사진에 대해 아빠에게 말하니, 아빠는 그때를 추억할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먼저 자란 몸과 나중에 자란 몸 사이에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시공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항상 반박, 아니 몇 박이고 늦게서야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진에 남아있는 아빠는 지금보다 적은 주름에 건장한 청년과 중년 사이의 남성인데, 지금 내게 이 남성은, 나도 이미 이른바 어른임에도,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어른으로 남을 그런 인물처럼 느껴진다. 내가 한사코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그는 아빠의 얼굴을 했기 때문이다. 그 사진을 곱씹어보는 지금, 나는 정말 내가 버섯이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아빠의 몸을 써서 버섯처럼 자라났다. 

     나는 “표고버섯같은 막내!!!”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이상한 불편함을 덮어두기라도 하듯 프로필 창을 닫아왔다. 그리고 이 글은 더는 잠자코 있을 수 없던 불편감의 등쌀에 떠밀려 쓴 글이다. 아빠의 프로필 문구가 나에게 주는 희한한 감정은 아마도 표고를 키우는 아빠에게서 생명을 대하는 모습을, 그러니까 나를 키웠던 아빠의 모습을 투사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저 짧은 문구를 입력했을 아빠의 손에, 표고버섯으로 번진 나를 키울 적 아빠의 애정과, 나에게 번진 탐스러운 버섯이 주는 즐거움이 뒤섞여 있었을 생각이 들면 나는 얼른 그 프로필 창을 끈다. 계속 모른 채로 지내야 하는데 뭔가를 알아버릴 것 같은 경각심이 발동하는 탓에, 왠지 나는 그 문구를 오래 마주할 수 없다.

     하루는 인간이 왜 자신의 유아기 시절 기억을 잃어버리게끔 진화한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이건 뭔가 너무나도 심오한 일이어서, 소위 신과 같은 초월적인 주도자의 계략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왜 나는 ‘내’ 기억에서 소외되는 걸까. 가령 유아기의 기억을 간직하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던가, 아니면 무의식이 성장할 수 없달까, 하는 추측이 난무할 때, 한편 단순하게도, 그 기억은 ‘내 것’이라기보다, ‘부모의 것’인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아기 시절의 기억은 완전한 암전 수준이라 어떤 의미도 발굴될 수 없는 반면에, 아빠에게 그 당시를 물으면 아빠의 기억은 물 흐르듯 끊임없이 재생된다. 그리고 거기엔 충만한 의미들이 바다를 이루며 넘실댄다. 나의 잊힌 기억은 내 삶보단, 오히려 그들의 삶을 풍부하게 만든다. 아빠의 회상을 들어보면 그때의 시간은 마치 당신을 더 살아가게끔 하는 그런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치 의미를 전달한 문장이 구두점이 찍혀 완성되듯, 그 시절의 가치로움을 매번 내 덕택으로 돌리면서 끝나는 아빠의 회상을 듣노라면, 결코 당사자가 될 수 없는 내 얼굴엔 묘한 회피심과 동시에 어정쩡한 웃음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 글을 마치고 난 후 다시금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땐 내 얼굴에 무엇이 띌지 잘 모르겠다. 어렴풋하게나마 계획할 수 있는 건 그 이야기를 오직 키워진 나로서만 듣지 않고 키운 아빠로서 들어보는 것이다. 혹은 그의 형제로서, 도플갱어로서 아니면 그 자신으로서. 이 글은 아빠의 몸으로 키워진 나와, 키워진 버섯이 가진 연관성에서 시작되어, 몸과 몸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나아가 몸을 매개로 하는 하나의 순환 구조를 향해 나아간다. 이 되풀이 되는 이야기에서 키우고 키워지는 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그 둘 사이를 잇는 건 보이지 않는 우리의 이름 없는 균사이며, 이 균사를 통해 가능해지는 다양한 신체적 관계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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