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를 메우는 그만치의 빈자리

빈자리를 메우는 그만치의 빈자리

그와 나는 14년에 만나 19년까지 동거했다. 내가 유학길에 오르면서 우리 관계는 유착된 것이 억지로 찢길 때처럼 산산이 조각났다. 가장 지척의 것이 하룻밤 새 만 리 너머로 달아갔구나. 20년 나는 그에게 이별을 고했고 우리는 얼굴 한 번 마주 보지 못한 채 6년이란 세월을 마감했다. 그 이후 뻔뻔스레 살아갔지만 언젠가는 미뤄둔 빚을 청산해야 하듯, 22년 초 나는 아주 무너졌다. 이 글을 쓰는 10월로부터 몇 주 전 그에게서 새 가족을 꾸릴 거란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때 서둘러 가능한 모든 감정을 호출했는데, 걔 중 가장 즉각적인 건 기쁨이었고, 그 사실로부터 다시금 기쁨을 느꼈다. 나는 새 소식을 축하했고, 그와 잠시 오랜만에 수다를 떨었으며, 이후 산책하면서 아주 울었다.

그 수다에서 그와 내가 동시에 확인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남긴 부재의 구멍을 어떻게 해서도 채울 수가 없더라는 것. 그와 나 각자 앞으로 서로가 아닌 다른 연인을 만나겠지만 그들을 통해서 이 구멍을 지우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구멍의 역할은 메워지는 것이 아니라 빈 것을 빈 것으로 유지하는 데 있다는 것을, 서로의 마음에 바람길을 낸 사람들끼리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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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런 이야기를 가진 내가 박지인의 개인전 <눈가의 작은 점을 스와이프>에서 발견한 몇 가지 의미들을 해제한다. 나에게 그의 작업은 자신에게 남겨진 누군가의 부재를 그것을 채우려 하지 않고, 오히려 가만히 바라보는 쓰디쓴 일련의 시도로 읽힌다. 그는 사진으로만 남은 그리운 대상을 연거푸 복사하고 (「그리움만 쌓이네」), 옛 연인이 올린 SNS 속 장소를 뒤쫓으며 다시금 그의 빈자리를 확정하며 (「’S’가 없는」, 「내가 추적하고 있는 사진」), 우두커니 서서 그 아무도 아닌 사람들을 줌인zoom-in하여 누구를 추적하는지도 모른 채 자꾸만 누군가를 앵글에서 놓친다 (「베니스에서의 추적」). 부재를 감당해 내는 그의 구체적인 방법은 시각 의존적이고 반복적이며, 종국엔 되려 부재를 강화하는 실패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업들이 내게 건넨 질문은 다음과 같다: 작가는 왜 자꾸만 부재를 소생시키는가.

만질 수 없는 대상과 접촉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은 검은 액정을 깨워 그 아래 고여있는 사진 들을 뒤적이는 것이다. 「그리움만 쌓이네」는 그리운 대상을 애꿎은 종이 더미로 치환시킨 작가의 빗나간 노력이 다. 기억을 붙잡듯 거듭 복사된 이미지 속에서 너는 점점 더 형체를 잃고, 너를(종이 더미를) 쓰다듬을수록 너는 계속해 달아난다. 결과적으로 전시장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그리움만 쌓이네」의 첫 얼굴은 아무런 자취도 남지 않은 육면체 공산품의 흰 덩어리다.

더는 물리적일 수 없는 관계를 복원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나아가 작가는 관계의 부재를 시공간에서 직접 나 서 경험한다. 「’S’가 없는」은 전 연인이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사진을 참고하여 작가가 스스로 동일한 사진을 찍어보는 작업이다. 6년 동안이나 세계 각지를 떠돌며 모방을 목표로 삼는 동안, 작가는 최대한 같은 사진을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인의 사진과 자신의 것을 비교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계정을 액정 위로 염탐하는 것을 넘어서 뒤늦은 스토킹을 감행한 그가 목도한 것은 동일함의 정도가 아니라 차이의 정도였으리. 이후 「내가 추적 하고 있는 사진」에서 작가는 웹 공간으로 활동 영역을 옮긴다. 그는 인터넷 서칭을 통해 동일한 듯 보이는 더 많은 사진을 찾아내 한 화면에 모아 놓는다. 그럼으로써 증가하는 것은 서로의 관계성이 아닌, 그의 사진도 인터넷 공간 속 여러 사진들 중 한 장으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익명성이다. 작가가 마련한 사진첩에서 ‘너와 나’로 맺어진 필연적 관계는 웹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우연의 산물로 추락한다.

‘그’가 더 이상 ‘그’일 필요가 없다고 어느새 작가는 말한다. 「베니스에서의 추적」에서 그는 고정된 위치에 서서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길 위의 행인들을 카메라로 뒤쫓는다. 추적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을 짧은 시간 동안 간 편히 따라가다가 놓치고,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 곧장 다른 사람을 뒤이어 따라가길 반복한다. 이 영상에서 작가의 추적 대상은 그와 개인적 인연을 맺었던 특정 인물에서 익명의 군중 다수로 확장된다. 그는 이제 아무나 뒤쫓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뒤집어 말하자면 이렇다: 그는 누구를 통해서도 부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개인전은 박지인이 자신에게 남겨진 타인의 부재를 놓지 못한 채 그 속에 들어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준 다. 이를 시쳇말로 미련하다고 말하자면 그는 지독하게 미련하다. 대신에 나는 무엇인가를, 막연하게, 그리워하기가 그가 시간을 보내는 여러 방법들 중 하나로 자리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시간을 보내는 것과 사는 것은 서로 다른 걸 의미하지 않을 테다. 부재의 자리를 더듬던 작가의 적적한 시도는, 어느덧 삶의 태도가 되어 그를 살아가도록 추동한다. 그래서 이 전시의 제목이 선하게 그려진다. ‘스와이프’는 21세기를 살아가는 그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현대적 실천법이다. 그가 훔치는swiping 그것이 사진이나 SNS일지, 아니면 눈 밑의 작은 점일지, 혹은 그 점이 불러 낸 눈물일지 모를 일이다.

해당 글은 박지인 개인전 <눈가의 작은 점을 스와이프>을 소개하는 글로써 전시 기간 동안 전시장에 비치됨.
더 자세한 사항은 아래 갤러리 ‘온수공간’ 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음.
https://www.onsu-gonggan.com/2022/10/swiping-little-dot-under-your-eyes.html







An absence filled with that much absence

He and I lived together from 2014 to 2019. With my decision to study abroad our relationship shattered into pieces, as if forcibly tearing something that has been conglutinated. Something within my grip ran ten thousand miles away in a single night. I left him in 2020, and our six years of being together ended without even bidding farewell face to face. I tried to live on in a shameless way; yet in a manner similar to the settlement of one’s put off debt, the shamelessness did not help me from severely falling apart at the start of 2022. I’m writing this now, in October. Some weeks ago I heard from him that he will be getting married soon. I summoned all emotions I could possibly express at the very moment, and hopefully I expressed joy, and felt joy from the very fact. I celebrated the newly known event, chatted with him for a brief moment in a while, and bawled my eyes out while taking a walk afterwards.

He and I confirmed a common fact during the fleeting talk. That we both could not fill in the hole dug on each other, no matter how hard we tried. That we both would meet new lovers, yet it was unthinkable to erase this hole through them. That the hole is not meant to be filled, but to remain empty as it is, said the very ones who caused this emptiness in each other’s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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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anecdote raises the meanings behind Jiin Park’s solo exhibition, Swiping the Little Dot Under Your Eyes. Park’s works appear as a series of bitter attempts on contemplating the absence of a lost someone. Without trying to fill the hole in, Park insists on duplicating that someone’s remaining pictures (Repeated Copy), continues to track down places she saw in her ex’s social media account only to confirm again his vacancy (Without ‘S’, The Pictures I Am Tracking), and remains still while zooming in random people, without even knowing who to chase after, or whom she is losing inside the frame of her camera (A Chase in Venice). Her detailed methods on dealing with someone’s absence are pro-visual and pro-repetitive, and end up being failed attempts. In other words, they reinforce the vacancy. This observation leads to the following question: why does Jiin Park keep on reviving the absence?

The only possible action for the artist to take in order to touch the untouchable is to wake the black screen up and browse through the pictures hidden underneath. Repeated Copy holds Park’s straying effort on retaining the missed one, as she replaces him with some stack of paper. Throughout the duplicated images, ‘you’ gradually lose ‘your’ form just like memory fades away along the time. ‘You’, the stack of paper, keep on running away the more I caress ‘you’. In the end the first impression of Repeated Copy that the audience is facing is a traceless, white lump of a hexahedral industrial product. 

Furthermore, Jiin Park experiences this absence as if to restore a no longer physical relation. Without ‘S’ is about the artist trying to take the same picture she saw in her ex’s social media account. During the six years of her wandering around all places in the world for an attempt at mimicking, the artist would have constantly compared her pictures with her ex-lover’s originals to make them look identical. The late ‘stalking’ which started off as an effort to witness their (maybe) ongoing correspondence ended up revealing their differences. In a more recent work, The Pictures I am Tracking, Park moves her working area to the web-environment. By surfing on the Internet she collects more pictures that greatly resemble the originals, and puts them altogether on a single surface. However the action does not boost their connection; instead the pictures Park owned degenerate into random images found online. In the picture album provided by the artist, the inevitable relation named ‘You and I’ falls off as typical images we encounter on the Internet by chance.

Along the line, Jiin Park states that ‘he’ no longer needs to be ‘him’. In A Chase in Venice, she remains still and randomly chooses a place where she would track passengers on the street with her camera. She would, for a brief moment, leisurely follow people that do not need to be chased after, and then lose them, but then nonchalantly follow another. In the video Park’s target has moved from someone once involved in a deep relationship with the artist, to an anonymous mass of people. It seems like Park is now following any person, but this goes without ignoring the fact that she is now able to confirm the absence through anybody.

Jiin Park’s solo exhibition shows the artist submerged in the absence of the other. In a buzzword, Park is foolishly lingering on somebody. Nevertheless, I instead think that the act of missing something, endlessly, has become for Park a way to spend her time. Spending time is no different from continuing to live on. The artist’s attempt on caressing the vacant seat has become her way of living in a matter of time, and urges her to live on. That is the reason why I can clearly visualize the exhibition’s title in my head. ‘Swiping’, in the 21st century, has become a contemporary way of missing someone. Whether Jiin Park steals a picture or a social media’s experience, or a little dot under someone’s eyes by the act of swiping remains unspoken.

Translation I Yunseo Lee



This article introduces Jiin Park’s solo exhibition and was displayed in the exhibition during the period.
More details can be found on the gallery ‘Onsu-Gonggan’ page below.

https://www.onsu-gonggan.com/2022/10/swiping-little-dot-under-your-eyes.html

Copyright 2022. Jeongeun Kang, All pictures and text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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